모로코 4강 진출
아프리카 최초 기록
선수 대부분 이중국적

“이변이 계속되면 실력이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유독 많이 연출되고 있는 이변이 토너먼트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특히 카타르에 모로코 돌풍이 거세지고 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8강 모로코와 포르투갈의 경기에서 모로코가 1-0으로 승리하며 아프리카 축구의 새 역사를 작성했다.
모로코는 16강에서 스위스를 무려 6-1로 꺾고 올라온 스타 군단 포르투갈을 상대로 전반 42분 터진 유세프 엔 네시리의 선제골을 마지막까지 지켜내며 포르투갈을 따돌리고 모로코 축구 역사상 첫 번째 4강 진출이자, 아프리카와 아랍권 국가의 첫 4강 진출이라는 엄청난 영예를 안게 됐다.
92년 역사상 처음
아프리카 축구의 힘
92년 만에 처음으로 아프리카가 FIFA 월드컵 무대의 주연이 됐다. 주인공인 모로코의 4강 진출은 그간 유럽 국가가 주도해온 월드컵의 커다란 전환점이다. 유럽과 남미 외 국가가 4강에 진출한 건 제1회 1930년 우루과이 대회의 미국, 2002년 한일 월드컵의 한국에 이어 세 번째다. 또한 1970년 처음으로 월드컵에 참가한 모로코는 통산 6번째 월드컵 출전 만에 4강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모로코는 이번 대회 ‘다크호스’라는 평가를 받긴 했지만, 이 정도의 성과를 낼거라고 예상한 전문가는 없었다. 조별리그부터 현재까지 3승 2무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고 벨기에를 꺾을 때까지만 해도 ‘운이 따랐다’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제 새로운 강호로 세계 무대에 당당히 섰다. 아프리카 축구의 저력을 선보이고 있는 셈이다.
모로코식 질식 수비
‘야신 부누’ 존재감


모로코는 벨기에, 스페인, 포르투갈을 상대하면서 볼 점유율, 패스 성공률, 슈팅과 코너킥 수 등에서 모두 밀리는 경기를 펼쳤지만, 결과를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모로코의 이번 대회 컨셉은 뚜렷하다. 상대를 늪에 빠지게 하는 질식 수비가 모로코의 선전 밑바탕이 됐다. 두 줄로 빽빽하게 서서 상대에게 틈을 내주지 않으며 이번 대회 조별리그에서 단 1골만 내줬고, 토너먼트에선 2경기 무실점을 기록했다.
1골 실점도 모로코 수비수의 자책골로 결국 5경기를 치르면서 상대 선수에게 단 한 골도 내주지 않은 것이다. 특히 짠물 수비 선봉엔 이번 대회 최고의 골키퍼 야신 부누가 있다. 부누는 8강전에서도 포르투갈의 파상공세를 선방으로 물리치면서 최우수 선수로 뽑혔다. 스페인 세비야의 주전 키퍼로 활약하고 있는 부누는 단일 월드컵에서 3경기 무실점을 기록한 선수가 됐다.
대표팀 26명 중 14명
이민 가정 출신

사실 모로코는 이번 월드컵 개막 전부터 선수 구성에서 관심을 끈 팀이다. 전체 엔트리 26명 중 절반이 넘는 14명의 선수가 모로코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나고 자란 이민자 가정 출신이다. 즉, 이중 국적 선수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32개국 중 자국 태생 선수 비율이 가장 낮은 팀이 모로코다.
골키퍼 부누는 캐나다, 나머지 13명은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에서 태어났다. 대표팀 전력이 좋은 유럽 국가에선 국가대표로 뽑히기 쉽지 않기 때문에 이중 국적 선수들은 유럽이 아닌 부모 나라 국적을 택해 월드컵을 출전하는 경우가 있다. 모로코 대표팀에는 모로코 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는 단 3명뿐이고 나머지는 유럽 리그 20명, 중동 리그 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수들 뭉치게 한
끈끈한 ‘가족애’


아프리카와 아랍 축구의 새 역사를 쓴 모로코 대표팀의 동력으로 ‘이민자 가정의 끈끈한 가족애’가 주목받고 있다. 모로코의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이 가족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장면도 큰 화제를 모았다. 하키미와 부팔은 어머니에게 사랑스러운 입맞춤을 했고 이에 어머니도 아들에게 뽀뽀 세례를 퍼붓는 등 ‘가족애’를 유별나게 과시했다.
아랍권 매체에 따르면 이번 월드컵에 모로코 감독의 제안으로 선수단 모든 가족을 초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독은 유럽의 주요 리그에서 뛰고 있는 이민 가정 출신 선수들에게 ‘가족애’가 정서적으로 큰 동기로 작용한다고 봤고 선수들이 가족들과 함께 생활한 덕분에 감정적으로 편한 상태에서 월드컵을 치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모로코 선수들은 어렵게 자신을 낳고 기르며 선수로 성장할 수 있게 해준 부모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크다.
역사가 만든 팀워크
선수들 마음가짐

서로 다른 나라에서 나고 자란 선수들이 모인 만큼 하나가 되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모로코는 달랐다. 승리를 하겠다는 단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똘똘 뭉쳐 싸웠고 차별과 냉대를 받으며 자란 이민자 2세인 이들은 더욱 깊어진 조국애로 뭉쳐 카타르에서 사고를 치고 있다. 대를 이어온 고된 이민 생활은 조국을 향한 애정을 더욱 깊게 만들기도 했다.
모로코의 4강 상대는 자국을 식민 지배한 나라이자, 이민 생활의 한이 서려 있으며, 유력한 우승 후보로 손꼽히는 프랑스다. 야신 부누는 8강전 승리 후 “우리가 열등하다는 인식을 버리고, 사고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모로코 선수는 세계의 누구든 상대할 수 있다”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더욱 강한 동기부여가 생기는 프랑스와의 준결승에서 모로코가 또 한 번의 사고를 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