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체카드 4명이 만든 기적
1년 전 역습 고집에 경질설
16강 넘어 8강까지 노린다
특히 일본이 속한 E조는 독일을 비롯해 월드컵 2회 우승국인 스페인과 북중미 강호 코스타리카가 한 조에 묶여 ‘죽음의 조’로 불렸기에, 일본이 우승을 거둔 것은 그야말로 이변이라 말할 수 있다. 이날 승리로 일본은 역대 월드컵 최초로 선제골을 허용한 뒤 역전승을 거둔 경기로 기록됐는데, 27일에 있을 코스타리카전에서 일본이 승리할 경우 두 경기 만에 16강 진출을 확정 짓게 된다.

이에 외신들은 일본 대표팀을 이끈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을 주목하고 있다. 이는 일본이 전반전 내내 독일에 밀리며 맥없는 경기를 펼쳤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후반에 독일을 무너트린 모리야스 감독의 전술을 높이 산 것이다. 하지만 불과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자국 내에서 감독 자질을 의심받았던 만큼, 독일전 승리는 모리야스 감독에게 남다른 의미를 준다.
새 역사 바라던 모리야스
용병술로 소망 이뤘다

모리야스 감독은 독일과의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독일 축구가 일본 축구 발전에 큰 도움을 줬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독일은 월드컵 우승국이고, 월드컵 우승은 우리의 목표이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의 롤모델이다”며 “독일로부터 배운 것을 일본이 가진 자질로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의 목표는 16강의 벽을 넘어 8강에 오르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역사가 바뀌게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모리야스 감독이 이렇게 말한 것은 일본이 월드컵에서 거둔 최고 성적이 16강에서 그쳤기 때문이다. 이런 모리야스의 꿈은 경기 전반까지만 해도 유효 슛팅 1개에 그치며 그저 꿈으로 끝날 뻔했으나, 분위기 전환을 위해 후반전에 꺼내든 교체카드가 빛을 발한 것이다.

모리야스 감독은 쿠보 다케히사 대신 토미야스 타케히로를 투입해 3-4-3으로 포메이션에 변화를 줬다. 이후에도 미토마 카오루, 아사노 타쿠마, 도안 리츠 등 총 4개의 교체카드를 활용해 공격 빈도를 높였는데, 결국 후반 30 미토마의 패스를 받은 미나미노가 독일의 골망을 흔들어 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8분 뒤 또 다른 교체 선수 아사노가 역습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슛으로 연결해 2-1 역전승을 견인했다. 이로써 모리야스 감독은 자신의 발언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며, 목표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됐다.
월드컵 개막전까지
경질 위기와 비난 대상

그러나 모리야스 감독은 경기 직전까지도 자국 매체로부터 끊임없이 비난을 받아야 했다. 지난 23일 일본 매체 ‘산케이스포츠’는 “일본 축구의 팀 컬러가 명확하지 않다. 대표팀 선수 대다수가 유럽 등 해외리그에서 뛰고 있는데 왜 감독과 코치는 자국에 집착하는 팀으로 만들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고 보도했다.

이는 모리야스 감독 체제에서 선수들의 경기력이 극대화하지 못한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인데, 다른 매체인 ‘닛칸스포츠’는 한술 더 떠 일본의 16강 진출 가능성이 한국보다 낮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들은 카타르월드컵 출전 32개국의 전력을 정밀 분석한 결과 E조는 독일과 스페인이 양강구도로, 일본은 코스타리카전에서 승점 3점을 획득하는 게 목표다라고 예상한 것이다.
이와 것은 분석은 당시 일본 대표팀 핵심 선수들의 부상 소식이 전해진 것이 영향을 끼쳤을 테지만, 그동안 보여준 모리야스 감독의 전술이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23세 이하 대표팀 감독을 겸임했던 그는 2020 도쿄올림픽에서 패스보다는 역습을 노리는 전략을 고수하며 4위로 대회를 마감한 바 있다.

이어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에서도 불안한 출발을 보였는데, 초반 3경기를 1승 2패를 기록해 조 4위까지 쳐진 것이다. 이를 본 일본축구협회는 최악의 사태를 대비해 모리야스를 경질하고 후임 감독 작업까지 준비했다. 이후 경기에서 일본 대표팀은 상승세를 타며 마침내 본선 티켓을 따냈으나, 일본 축구팬들은 이미 모리야스 감독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다시 일어난 모리야스 감독은 특유의 역습 축구로 이번 월드컵에서 16강행 청신호를 만들어냈다.
외신도 극찬하는
일본 스타일 축구

한편 모리야스 감독이 독일을 제압하고 우승하자 축구 통계 사이트 ‘옵타’는 일본의 조별리그 통과 가능성을 72%로 점쳤다. 특히 외신들은 앞다퉈 일본을 칭찬하는 기사를 보도했는데, 영국 매체 ‘BBC’는 “0%의 승률로 질것이라 생각한 일본이 독일을 꺾었다. 숫자만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결과이지만, 후반전에서 보여준 일본의 경기력은 높게 평가한다”고 전했다.

BBC 해설위원은 “후반부터 일본이 제대로 싸우기 시작했다. 독일은 리드를 빼앗긴 채 크게 흔들렸다”며 “일본이 만든 결과로 E조를 흥미롭게 만들었다”고 평했다. 또한 필리프 트루시에 전 일본 대표팀 감독은 “역사에 남을 이변. 대단하다”고 축하 인사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