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캠프에서 월드컵까지
국가대표 핵심 선수로 우뚝
1300억의 사나이 안토니

지난 21일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의 시작을 알리는 막이 올라가기 전 이번 대회를 참가하는 32개국은 자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을 공개한 바 있다. 이들은 월드컵 무대라는 하나의 꿈을 가지고 출전하게 됐는데, 그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끄는 선수들의 사연이 주목받고 있다.
이 선수들은 자신이 태어난 환경에서 펼치지 못했던 꿈을 이루기 위해 먼 길을 떠나야 했거나 보다 나은 삶을 완성시키고자 이를 악물고 발버둥을 쳐야 했다. 그렇다면 과연 불우한 어린 시절을 이겨내고 ‘인간 승리’ 드라마를 쓴 선수는 누구인지 알아보자.
맨발로 공 찼던 난민소년
호주에서 찾은 꿈

가장 먼저 살펴볼 선수는 호주의 ‘아워 마빌’이다. 그의 부모는 남수단 출신으로 내전을 피해 UN이 운영하는 난민촌에서 가정을 꾸려 1995년 마빌을 낳았다. 진흙으로 된 방 한 칸짜리 집에서 10살이 될 때까지 살았는데, 축구밖에 모르던 마빌은 맨발로 누더기 같은 공을 차며 선수의 꿈을 키웠다.
그러던 중 부모와 함께 호주로 이주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가진게 없던 마빌은 축구로 성공해야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에 유소년팀에 입단해 자신의 재능을 펼쳤고, 마빌의 가능성을 본 팀은 16세가 되던 해 세미프로리그에 데뷔시켰다.

세미프로리그에서 경험을 쌓은 후 이듬해 호주프로축구 A리그의 애들레이드 유나이티드에 입단하게 됐는데, 20세가 되던 2015년에 덴마크의 FC 미트윌란을 통해 유럽무대까지 밟게 됐다. 올해에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카디스 FC로 이적한 것은 물론 호주 국가대표팀에 발탁되는 기염을 토했다.
무엇보다 마빌은 호주 대표팀 내 유일한 흑인으로 이목을 끌었는데, 지난 6월에 있던 카타르 월드컵 대륙간 플레이오프 결승에서는 페루와의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서 골을 성공시킨 주인공이 됐다. 경기가 끝난 후 마빌은 “축구로 성공하는 꿈이 이루어졌다. 내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데, 호주가 우리 가족에게 인생의 기회를 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캐나다 역대 최연소 선수
세계적인 선수로 거듭나

36년 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게 된 캐나다 대표팀에도 난민 출신의 선수가 있다. 바로 FC 바이에른 뮌헨과 캐나다 대표팀에서 핵심 전력으로 평가받는 ‘알폰소 데이비스’다. 그는 지난 14일 오랜 꿈이었던 월드컵 출전 소감을 자신의 SNS를 통해 밝혔는데, “난민캠프에서 태어난 아이는 성공할 수 없다고 했지만, 난 이제 월드컵에 가게 됐다”고 말했다.
데이비스가 이렇게 말한 데에는 그가 가나 부두람의 난민 캠프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의 부모님은 라이베리아 출신이지만, 그들은 내전을 피해 자국을 떠나 가나로 옮겨야 했다. 그러다 데이비스가 5살이 되던 해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고 캐나다로 이주한 뒤 2017년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런 그는 시민권을 얻은 해에 캐나다 국가대표팀 역대 최연소 선수에 이름을 올렸는데, 꾸준히 축구에 대한 꿈을 가지고 이룬 노력의 결실이다. 또한 2018년에는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한 그는 팀 역사상 18세 미만 최고 이적료를 갱신하며 세계적인 선수 반열에 올랐다.
어린시절이 오히려
나를 강하게 만들어

한편 브라질의 안토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마빌이나 데이비스처럼 난민캠프에서 자라지 않았지만, 어린시절 범죄 노출이 심한 환경에서 자라온 사실이 알려졌다. 안토니는 16일 영국 매체 ‘더 선’을 통해 자신의 어린시절을 고백했는데, 그는 “내가 8~9살이던 나이에 학교로 걸어가는 길목에 누워 있는 한 남자를 우연히 봤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는데 더 가까이 갔을 때 그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브라질 남부 상파울루 지역의 빈민가에서 살았는데, 시신을 비롯해 마약, 갱단들이 즐비한 동네였다. 이에 안토니는 “위험한 환경에 노출됐던 어린 시절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호나우지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네이마르 주니어 같은 선수들을 보며 묘기를 부리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다”고 축구 선수를 꿈꿨던 과거를 회상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매우 운이 좋았다. 그곳에서는 빈민가의 아이나 노인, 노동자, 마약상, 갱단 모두가 평등했다”며 “축구화를 살 돈이 없어 아스팔트에서 맨발로 축구를 해야 했지만, 3년 만에 빈민가에서 아약스, 맨유까지 오게 됐다”고 불우했던 시절의 환경이 자신을 성장시켰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안토니는 축구에서 두려울 게 없다고 전했는데, “학교를 가기 위해 시체를 뛰어넘어야 했던 나는 축구에서는 그 어떤 것도 무서울 게 없다”고 밝혔다. 그의 이런 자신감은 맨유가 높게 샀는데, 아약스에 있던 그를 데려오기 위해 약 1300억 원을 지불하기도 했다. 이후 바늘구멍 통과만큼이나 어렵다는 브라질 국가대표팀에 승선하며,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관심을 받고 있다.